예술가의 은밀한 공간으로의 초대: 붓끝이 추는 발레, 그리고 흙으로 빚어낸 삶의 궤적

우렁각시나 혼귀를 직접 마주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 곁을 조용히 맴돌며 지켜주는 어떤 미지의 존재를 감지해 본 적이 있는가. 예술가의 작업실, 그들이 숨 쉬고 밥을 먹으며 삶을 엮어내는 사적인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은 바로 그런 비범한 심연과 마주하는 일이다. 캔버스 위에 박제된 결과물을 넘어, 예술이 어떻게 태동하는지 그 막후를 훔쳐보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장욱진의 유유자적한 붓장난, 그 속에 깃든 선불교적 사유

단순한 선형으로 인간의 일상과 동물, 자연의 본질을 꿰뚫어 냈던 화가 장욱진. 그가 말년에 머물렀던 경기 용인의 한옥과 양옥 공간에 들어서면 먹을 툭툭 찍어 휘휘 그어 내린 그림들에서 묘한 귀기가 출렁거린다. 과거 장년기 시절, 꼬들꼬들한 선묘로 삶과 자연의 순환을 해학적으로 풀어냈던 장욱진표 유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깊은 맛이다.

스스로 ‘붓장난’이라 낮춰 불렀던 일필휘지의 먹그림들은 그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유유자적하게 남긴 족적이다. ‘달마’, ‘법당’, ‘아이와 집’ 같은 작품들은 시장의 입맛이나 컬렉터를 의식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위적인 의도와는 철저히 동떨어져 있다. 오직 자유인으로서의 평상심, 유희를 향한 순수한 욕구, 그리고 홀로됨의 깊은 사유만이 화면을 채울 뿐이다. 굵고 짧은 선으로 압축과 생략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 특유의 필획은 말년의 선불교적 사유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작품 감상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공간 그 자체다. 전통 한옥 부엌에 양식 구조를 덧대어 개조한 주방은 서양식 선반과 식탁이 한지 출입문, 전통 목가구와 기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앞뒤로 시원하게 뚫린 창을 통해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호흡할 수 있는 이 거처는 대가가 얼마나 자신의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려 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역 사회와 호흡하는 개방형 예술, 데이비스 스튜디오 투어

이처럼 창작자의 숨결이 밴 공간을 대중과 공유하려는 시도는 시공간을 넘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자생적인 예술가 커뮤니티의 연대로 부활한 데이비스 아트 스튜디오 투어(Davis Art Studio Tour)가 대표적인 예다. 지역 창작자들이 자신의 은밀한 작업실을 기꺼이 대중에게 개방하는 이 행사는 예술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피어나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다.

이 투어의 흐름을 간략히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초창기: 지역의 다채로운 예술 씬을 기념하는 뜻깊은 커뮤니티 행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 휴지기와 부활: 전 세계적인 팬데믹의 여파로 수년간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최근 소수의 지역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성공적으로 행사를 재개했다.

  • 지속적인 확장: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에 힘입어 참여 창작자의 규모가 눈에 띄게 늘어나며 지역 사회에 새로운 활기를 더해가는 중이다.

투어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오랜 기간 이 지역에 터를 잡고 활동해 온 도예가 엠마 루나(Emma Luna)의 자택 겸 작업실이었다. 크로커 미술관(Crocker Art Gallery)을 비롯한 여러 곳에 작품이 소장된 그녀는 혼합 매체 작업도 병행하지만, 이번 공간 공개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린 도예 작업에 온전히 초점이 맞춰졌다.

이날은 때이른 강풍이 부는 짓궂은 날씨였음에도, 엠마의 아름다운 야외 정원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주해 온 제시카 레반트(Jessica Levant)의 추상화와 사진 예술 작품까지 함께 전시되어 볼거리가 무척 풍성했다. 한 공간에서 두 가지 결의 예술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완벽한 기착지였다.

흙을 만지며 찾아낸 정체성: 엠마 루나와의 궤적

공간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엠마 루나는 자신의 굴곡진 삶의 서사까지 기꺼이 들려주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십 대 시절 낯선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던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추위와 삭막함이 낯설었던 뉴욕에서의 첫 경험은 카리브해의 따뜻한 섬나라 소녀에게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극심한 가난 탓에 당장 생계를 꾸려야 했고, 예술가의 꿈은 기약 없이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버려진 깡통이나 골판지로 장난감을 만들며 놀던 꼬마 시절, 그녀의 엉뚱한 창의성에 끊임없이 지지와 확신을 주었던 새어머니의 따뜻한 격려가 내면 깊은 곳에 단단한 씨앗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성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난생처음 찰흙을 만지던 순간, 이것이 자신의 길임을 뼛속 깊이 직감했다. 지독한 가난이 억지로 가르쳐준 특유의 기지(resourcefulness)는 오히려 흙을 다루는 창작 활동에 강력한 무기가 되었고, 결국 미술 교육과 스튜디오 아트라는 두 개의 학위를 거머쥐는 열정으로 피어났다.

그녀에게 예술가로서 대중과 소통하는 이 오픈 스튜디오의 의미는 각별하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수집하고 가치를 인정해 줄 때 얻는 자신감은 지속적인 창작의 가장 큰 동력이 된다. 그녀는 내게 “내 작품이 아름답다고 느끼며 그것을 온전히 존중해 주는 이웃이 있다는 감각은,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선물”이라고 고백했다.

시대를 초월해 고요한 선의 경지를 묵묵히 보여준 노화가의 오래된 한옥에서부터, 척박한 환경을 기어코 이겨내고 흙으로 단단한 삶을 빚어내는 현대 도예가의 뜰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공간이란 결국 그들이 세상과 대중을 향해 건네는 가장 진솔하고 투명한 형태의 초대장일 것이다.